■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계속 사용, 수익하고 있는 경우에는 임대인으로서는 임차보증금반환의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없이도 실제 명도가 완료될 때까지 임차인에게 임료 상당의 금전을 당연히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임료 상당의 금전을 청구할 수 있게 되는 법적 근거는 부당이득반환 또는 손해배상이 됩니다.
■ 임차인이 임차보증금을 아직 지급받지 못한 경우 임차보증금의 반환에 관한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있지만, 동시이행 항변권의 범위는 임차목적물을 ‘점유’하는 것에 그칠 뿐, 이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용, 수익하는 것에까지 미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동시이행 항변권 행사에 따른 점유의 범위를 넘어서 임차목적물을 마치 임대차 계약이 존속하는 것처럼 종전같이 사용, 수익한다면, 그와 같은 사용, 수익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득을 취한 것이 되어 부당이득이 되고, 또한 점유할 권원의 범위를 초과한 무단점유로서 손해배상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 이에 반하여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임차목적물을 실질적으로 사용, 수익하지 않고 있고, 임대인도 임차인에 대하여 달리 임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을 하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차임 상당의 손해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판례의 실질적 부당이득설에 비추어 이 경우 임차인은 이득을 얻고 있는 바가 없어서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게 되고, 임대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을 하지 않은 이상 임차인이 갖고 있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유지되어 그 점유는 불법점유가 아닌 정당한 권원이 있는 점유로 인정되기 때문에 불법점유에 따른 손해배상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볼 경우, 임대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태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이행의 관계라고는 하지만, 임차인은 고작해야 임차보증금을 제 때 지급받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그 이자 정도의 손실이 있을 뿐인 반면(다른 특약이 없다면, 민법상 연 5%의 이율이 적용될 뿐이어서 그 손해액은 비교적 경미합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임차인으로부터 점유를 넘겨받지 못해 임차목적물을 다른 이에게 임대하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차임 상당의 손해를 입게 되는데, 차임은 통상 전세보증금 가격의 월 10% 비율의 고율에 이르기 때문에 임대인이 입게 되는 손해액이 임차인이 입게 되는 손해액에 비하여 훨씬 크게 됩니다.
■ 그래서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임차목적물을 점유만 하면서 실질 사용, 수익하지 않은 경우에 임차인에 대한 명도를 구하는 임대인으로서는, 이와 같은 차임 상당의 손실을 막기 위해 임차보증금 반환이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을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이 때 임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은 조건부 변제공탁(명도를 조건으로 하여 공탁금 수령이 가능)의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고, 이행의 제공방식은 원칙은 현실제공(즉, 임차보증금을 실제 준비, 지참하여 제시하는 장식. 그러나 하급심 판례 중에는 반드시 현실제공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본 예도 있습니다)으로 하되, 임차인이 임차보증금 반환을 받기를 거부한 경우에는 구두제공(임차보증금 준비 후 이를 명도와 동시에 받아가라고 구두 통지)으로 이행제공의 정도가 완화됩니다.
■ 한편, 그런데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에도 불구하고 임대차 존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그 명도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경우에도, 임대인으로서는 그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임차보증금 반환의 구두제공을 해야 하는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임차인이 미리 그 명도의 이행을 극력 거부하고 향후에도 그러한 거부의사가 달리 번복될 가능성이 없다면, 임대인 입장에서 임차보증금 반환의 구두제공을 하는 것조차 무용한 형식적 행위가 될 뿐이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어차피 수령거절할 것이 뻔한 임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의 제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혹시라도 임대인이 임차인의 이러한 사전의 거절행위 때문에 임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제공을 간과했을 경우 그와 같은 임차인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의 이익을 향유하게 한다는 것은 공평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 이에 대하여 학설은 대체로 상대방이 이행을 미리 거절한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이행의 제공의 정도가 완화(즉, 현실제공에서 구두제공으로)될 뿐이고, 동시이행항변권이 곧바로 소멸하지는 않는다고 보는 듯합니다. 하급심 판례 중에는 많은 수가 이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하급심 판례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60122 판결은 대법원 1995. 4. 28. 선고 94다16083 판결을 인용하면서,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의무에 관하여 미리 그 이행을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거절하고, 달리 그와 같은 거절의 의사표시를 번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볼 경우,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차보증금의 반환과 동시이행 관계에 있는 임차목적물의 명도 의무에 관한 이행의 제공을 할 필요도 없이 임대인에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의 이행지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의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사안이기는 하나, 반대의무의 이행제공의 필요도 없이 상대방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고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 사례로서 그 의미가 큽니다.
■ 한편, 위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60122 판결이 인용한 대법원 94다16083 판결은 ‘매수인이 잔대금 지급의무를 이행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을 의사가 없음을 미리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일방이 자기의 채무의 이행을 제공을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이행지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으로, 매수인이 이를 번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만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경우까지 매도인에게 매수인을 이행지체에 빠뜨리기 위하여 구두제공의 방법으로라도 자기의 반대채무를 이행제공할 것을 요구할 것은 아니라고 볼 것이다’고 판시하였는데, 이에 관하여 학설은 위 대법원 판례가 계약해제에 관한 것이고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것이 아니어서 [상대방의 동시이행항변권의 봉쇄-손해배상 청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많은 듯합니다. 이에 관하여는 추후 대법원 판례가 나타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 저희 사무소에서 취급한 아래의 사건도 이러한 이행의 제공 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즉, 상대방인 임차인은 임대차가 이미 종료되었음에도 억지를 부리면서, 리모델링 공사까지 강행하는 등 미리부터 그 명도를 명백히 거절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명도청구를 하게 되었는데, 상대방 임차인이 중간에 마음을 바꾸어 점포를 더 이상 실질사용, 수익하지 않았고, 임대인으로서는 임차보증금 반환의 제공을 간과하여 임차인이 점포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부터 차임 상당 손해배상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이었습니다. 만약 임차인에게 동시이행항변권이 인정되어 점포를 비운 이후부터 차임 상당 손해를 구할 수 없다면 임대인 입장에서는 꽤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월세만 500만원에 달하므로)이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일단 바로 임차인 측에 다시 임차보증금 반환의 구두제공을 시행하고, 법원에는 위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60122 판결 등을 인용하면서 상대방 임차인의 명백한 사전 명도 거절에 비추어 그 동시이행항변권이 이행제공의 여부와 관계없이 소멸하고 따라서 점포를 실질 사용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차임 상당 손해배상 의무가 있음을 강변했습니다. 그 결과 재판부에서도 상대방 임차인에게 그와 같은 사전 명도 거절의 점 및 동시이행항변권의 보호를 인정해 주기 힘든 점을 가지고 추궁하였고, 결국 임차인은 점포를 사용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월 차임을 공제하는 내용의 화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사실상 당초 청구와 거의 동일한 내용의 화해가 성립된 것이지요). 판결의 선고가 아니라 화해의 성립인 관계로 법원이 과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0가합60122 판결처럼 임대인의 임차보증금 구두제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손해배상을 인정했을 것인지는 결국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의뢰인인 임대인 분이 별다른 손해 없이 사안을 마감하게 되어 의미가 있는 사건수행이었습니다.
* 아래는 해당 화해조서 및 그에 첨부된 소장, 청구취지 변경신청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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