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선사건(강제추행, 벌금에 대한 정식재판 청구) 판결선고가 있었습니다. 선고기일에 따로 출석을 하지 않아, 피고인에게 연락하여 결과를 물으니, 무죄 주장에도 불구하고 유죄로 인정, 약식명령상의 벌금 그대로라 합니다. 그래서 바로 항소장 접수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피고인이 덧붙여서 하는 말이 재판장이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대하여 이야기하더라는 것입니다. 어? 약식명령상에 신상공개 내용이 따로 없었는데.. 정식재판청구에도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약식명령보다 더 불이익한 판결이 선고될 수는 없을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법조문을 찾아 봤습니다.
아, 신상공개는 판결 주문에 따로 명령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성범죄의 판결이 유죄로 확정되면 비로소 신상공개대상자가 되고, 다만 법원이 유죄판결을 선고할 때 신상공개대상자가 되는 것과 그에 따른 절차를 안내하게 되어 있구나… 그 동안 성범죄 사건을 여러 건 변론수행하여 왔지만, 신상공개 부분을 따로 검토할 사안은 없어서 오늘 비로소 관련 법규를 보고 처음 알았네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점이 일어났습니다. 조문은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또는 별도의 신상공개명령이 있는 경우에 신상공개대상자가 되게끔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약식명령이 확정된 경우도(즉, 송달받고 일주일 내 정식재판 미청구)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해당된다고 바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형사소송법은 약식명령이 확정된 경우, 그것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식명령이 유죄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간주하는 것과 약식명령 자체가 신상공개대상자 규정요건인 유죄확정판결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약식명령은 판사에 의하여 발령되기는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편면적인 수사기록만을 보고 이뤄질 뿐, 형사공판이 열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따로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이 변론할 기회도, 증거조사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절차를 거쳐 변론 및 증거조사가 이뤄진 후 내려지는 형사’판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특히 약식명령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될 때, 피고인이 재판절차의 부담때문에 억울하지만 그냥 벌금을 납부하고 약식명령을 확정시키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됩니다. 더욱이 제가 맡았던 국선사건의 경우(아마 다른 사건도 그런 것 같은데) 해당 약식명령이 확정되면 성범죄 유죄 확정판결로서 신상공개대상이 된다는 점을 따로 안내, 고지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성폭법상 신상공개 안내절차에도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이러한 고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중에 가서 신상공개를 강제하는 경우,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신상공개 대상자가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복의 기회를 놓치는 문제도 생깁니다).
한편, 확정된 약식명령에 대하여 확정된 유죄판결로 보지 않아 신상공개 대상에서 제외시킬 경우, 또 문제가 생기는데,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유죄가 선고된 경우가 그것입니다(1심 선고 이후에는 정식재판 청구 취하는 불가). 이 경우 약식명령을 확정시킨 경우에는 신상공개 대상이 되지 않음에도, 정식재판을 청구했다는 이유로 그보다 더 불이익하게 신상공개 대상이 됨으로써 불이익변경금지와 모순될 수 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점에 대하여 판례가 있을 법도 한데, 아직 찾아보기가 어렵네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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