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되어 있는 자는 일응 그 회사의 주주로 추정되며 이를 번복하기 위해서는 그 주주권을 부인하는 측에 입증책임이 있으므로, 주주명부의 주주명의가 신탁된 것이고 그 명의차용인으로서 실질상의 주주가 따로 있음을 주장하려면 그러한 명의신탁관계를 주장하는 측에서 명의차용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주주명부상의 주주가 아닌 제3자가 실제로 주식인수대금의 납입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행위의 기초된 원인관계로서는 여러 형태의 법률관계를 상정할 수 있으므로 주식인수절차의 원인관계 내지는 실질관계를 규명함이 없이 단순히 제3자가 주식인수대금의 납입행위를 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제3자를 주주명의의 명의신탁관계에 기초한 실질상의 주주라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7다27755 판결 등).
◆ 위 법리를 흔히 주주명부의 추정력 법리라 합니다. 위 법리에 기초하여 억울하게 회사를 빼앗겼던 분의 사안을 승소로 이끌었던 적이 있는데, 법률구조공단에 근무하던 때의 일입니다.
◆ 의뢰인은 동생 분에게 사업자금 조로 거액의 돈을 여러차례 빌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물상보증을 했던 자기 집도 경매로 날리는 등 피해가 많았습니다. 그 문제많던 동생은 의뢰인에게 그 동안 빌려준 돈을 갚겠다고 공증도 하였고, 자기가 운영하던 회사의 대표이사 직과 주식 50%를 부여하였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회사의 운영은 동생이 실질 전담하였고 의뢰인은 달리 운영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 처음에 위 회사에 경제적 값어치가 그다지 없을 때에는 사실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의뢰인으로서도 위 회사에 별다른 자산이 없었기에 동생에게 빌려준 돈을 위 회사를 가지고 어떻게 다시 회수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위 회사의 경영이 살아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이 욕심이 생기고 만 것이지요. 동생은 위 회사의 경영을 통해 의뢰인에게 빌렸던 돈을 갚기보다는 위 회사를 확실히 자기 것으로 빼돌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즉, 동생은 사실상 자신이 위 회사를 경영하면서, 의뢰인의 인감도장 등을 일체 보관하고 있던 점을 악용한 것인데요. 의뢰인의 인감을 임의로 사용하여, 의뢰인을 대표이사 직위에서 사임시키고, 동생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을 바지 사장으로 삼아 대표이사에 취임시켰으며, 의뢰인의 주식은 동생의 장인에게 전부 양도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졸지에 의뢰인은 위 회사에 대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 처음에 의뢰인 분이 공단에 찾아 왔을 때에는 사건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고, 의뢰인 쪽에서 동생 측에 대하여 제기한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마저 이미 기각된 상황이라, 패소의 선입견이 두드러진 상황이었습니다. 공단의 법률구조에는 ‘승소가능성'(소극적인 의미에서 승소가능성으로, 적어도 패소가 명백한 사안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담당 조사계장님께서는 자기 판단으로는 승소가능성이 희박하여 구조를 하지 않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나, 혹시 모르니 저더러 다시 한 번 검토하셔서 구조 여부에 관한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저도 반신반의하면서, 의뢰인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실 의뢰인 분이 법률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그 말씀하시는 부분도 갈팡질팡, 두서가 없으셔서,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에만 상당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도 승소전망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무언가 의뢰인의 억울한 사정만은 마음에 전달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법률구조에 동의하는 쪽의 의견을 개진했고, 그리하여 소송이 시작되어 1년 넘은 공방 끝에 승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 상대방은 의뢰인이 실제 주식대금을 납입하지 않았던 점, 실제 회사 운영을 자신이 다 하고 의뢰인은 인감만 맡긴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변하면서, 의뢰인이 그야말로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에 대하여 주효하게 쓸 수 있었던 무기가 바로 주주명부의 추정력입니다. 즉, 의뢰인이 일단 주주로 등재되었던 이상,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의뢰인이 바지사장임을(즉, 주식의 명의수탁자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 측으로서는 의뢰인이 실질주주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바지사장 주장에 의심이 갈 정도로 흔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상대방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의뢰인이 주식대금을 납부하지 않았던 것만 가지고 바지사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의뢰인과 상대방 간의 채권/채무관계에 기초할 때 적어도 의뢰인에게 주식의 양도담보권자로서의 지위(그렇게 볼 경우 실제 회사 운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를 가져 실질 주주라 보아야 한다고 법원이 인정하였습니다.
◆ 결국 위 사건은 우리 청구가 모두 인용되는 전부 승소(대표이사 지위 확인, 주주총회 및 이사회 결의 무효 확인-의뢰인을 퇴출하는 결의 내용이지요, 주식양도 무효확인)로 종결되었습니다. 아래는 위 사건의 판결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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