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구조공단 부산지부에 법무관으로 발령받아 간 후 거의 처음으로 수행했던 사건입니다. 의뢰인이 여자 고등학생 아이였는데, 가정사정이 안 좋아 가출한 이후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그 친구들이 지나가는 할머니를 폭행, 상해를 가하고 그 할머니가 차고 있던 반지를 빼앗아 가는 범행(강도상해죄 해당)를 저질렀을 때 그 옆에 있는 바람에 같이 공범으로 몰렸던 사안입니다.


 


◆ 의뢰인은 그 책임 여부를 떠나서 당시 몹시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친구들한테 폭행당하면서 비명을 지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가책을 느끼고, 죽고 싶은 마음만 들고는 했다는 것이죠.


 


◆ 저는 사실 당시 이런 강도상해죄 현장에 같이 있으면, 쉽게 공범으로 몰리게 되고, 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죄 취지의 변론보다는 최대한의 선처(소년원에는 가지 않도록)를 구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놀랍게도 재판장님께서 의뢰인의 사정을 꿰뚫어 보시고, 과감히 불처분(무죄에 해당) 결정을 내려 주셨습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재판장님의 말씀은 “OO야, 너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아. 네가 잘못한 것은 단 하나, 그런 좋지 않은 친구들을 어울려 다녔다는 것 뿐이야. 앞으로 잘 살아 나가면 돼”입니다.


 


◆ 소년 사건은 그 특성상 일반 형사와 달리, 재판부의 재량이 상당 부분 인정됩니다. 위 사건도 아마 일반 형사사건으로 심리되었다면, 무죄 취지의 결정이 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증거에 의한 판단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더 사안에 적합한 결과를 가져 오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